슈퍼맨이 죽었다. 정확히는 클락켄트가 죽었다. 브루스는 왜 그 사실이 안타까운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휘몰아쳤다. 얼마 전만해도 그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을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짧은 만남이 자신...
책상에 놓인 작은 거울을 내려다 보며 넥타이를 매고 있는 올리버를 보자 브루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침대에 누운 채로 얇은 하얀 천을 허리까지 끌어올리던 브루스는 그 천을 살짝 두르고 몸을 일으켜 침대 대에 자신의 몸을 기대었다. 새벽공기에 싸늘하게 식은 목재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브루스? 그렇게 웃지 말고 넥타이나 매주지?” “파티에 간다...
“16-TK421. 면회.”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작은 공간 내에 울려 퍼졌다. 금속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든 뒤에야 문이 열렸고, 주황색 옷을 입은 이름을 잃어버린 렉스가 그 좁은 공간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가 독방에서 나와 밖을 걷는 건 극히 오랜만이었다. 누군가가 찾아와 ‘낙인’을 찍으려 했으나 미수로 그쳤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다. 꽉 막혀버린 도로 옆에 놓인 한적한 교회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몇 번 울리는 가 싶더니 그대로 멈춰버렸지만. 아마 이 소리가 오늘 클락에게 처음으로 들은 소리다운 '소리'였다. "클락. 제 이야기 듣고 있는 거 맞죠?" 이제는 고개를 돌리는 것도 귀찮아 눈동자만을 움직이며 렉스를 쳐다봤다. 그의 붉은색의 얇은 곱슬머리조차도 짜증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그것이 가장 걸렸다. 브루스는 항상 클락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클락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클락은 그가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도 하나도 몰랐으며, 그의 관심사, 그의 과거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다. TV를 틀면 나오는 사람임은 틀림이 없었는데. 그의 차가 미끄러지듯 클락의 집 앞에 멈춰 섰다. “이따 저녁에...
청첩장이 도착했다.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전에 그가 아래에서 내 물건을 입에 한 가득 물며 그런 이야기를 꺼냈었다. 무드 없게. “뭐?" 입에 물고 말하면 진동되어서 흥분은 되었지만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의 작은 버릇이었지만. 그러자 그가 그 끝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말하는 거 잊었는데, 나 결혼해. 브루스.” “그래? 누구랑?” “너도 알 ...
전쟁을 위해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멈춰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눈물, 고통 그리고 죽음을 보는 건 무엇보다 힘들었으니까. 스티브는 그 고통을 느끼며 싸워왔다.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건지 잊어버릴 쯤 다이애나가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미소를 듬뿍 담은 채로 싸우고 있었다. 저로써는 이해를 하지 못했기에. "다이애나, 아까 보니 전쟁을 즐...
"이게 누구야." "브루스." 자정이 되어서 찾아온 손님은 뜻밖이었다.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는데. 반가운건지, 그저 놀란 건지 브루스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이 올리버는 늘 불만족이었다. "그래서 들어오라고 안 해?"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거든." 올리버는 아직도 현관에 서서 양손엔 가방을 들고 있었...
“파티라. 좋죠.” 보타이 하나 맬 줄 모르는 애 띤 청년은 거울 속에 비친 집사를 힐끔 쳐다봤다. 어쩜 저리 불만 가득한 말투로 긍정적인 단어를 내뱉는 건지. 그의 능력에 브루스는 늘 감탄할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죠. 알프레드.” “오, 불만이라뇨. 앞 동네 옆 동네 가리지 않고 초대장을 보낸 것도 부족해서 저 멀리 있는 스탈링시까지 보내다니. ...
“실종이요?” M은 고개를 끄덕거리다 주변을 살피며 작게 말했다. “일주일이 넘어. 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렇게까지 길게 연락이 안된 건 3일동안 몰래 휴가를 떠났던 때 밖에 없어. Q랑은 이야기도 자주 하니 뭐 아는 거 있나 해서.” 연락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나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갔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을 말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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